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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가는 길

강릉 가는 길

2019년 3월 30일 오전 8시 30분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고,
더 오랜만에 여행글을 쓴다.
KTX를 타고 강릉으로 떠나는 여행.
주말 내내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내가 바라던 산뜻한 봄바다가 아닌
먹구름 흐릿한 바다와 마주하겠지.
그래도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나는 바다라 그립고 설렌다.


오전 9시 40분
강릉에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은 처음.
경춘국도에서 기찻길을 바라본 적은 많아도,
기차 안에서 (북)한강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도 처음.

강릉여행은 큰 물을 보기 위함이다.
무한으로 반복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큰 바다를 바라보기 위함이다.
바다로 가는 길 위에서 안개 낀 강변을 달리고 있다.
산에 서린 안개도 물이다.
물 위에 물.
안개에 집요하게 매달리던 기형도 시인이 생각난다.
시인의 묘는 아버지의 묘와 지척이다. 그래서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한 권의 유작 시집과 한권의 유작 산문집으로 남은 시인.
내가 여행을 하며 노트에 끄적이는 버릇을 들인 건, 
시인의 산문집에서 광주로 향하는 여행기를 읽고 나서다.

하늘과 땅이 모두 물에 촉촉히 젖으니 감상에 젖는다.
기차는 큰 바다를 향해 달린다.


오전 10시 10분
물의 고장을 가로지는 기차는
산의 고장을 뚫고 간다.

여린 노란색이 뭍은 밭두렁에 봄이 물든다.
아주 푸르지도 
아주 메마르지도 않은 산들은 봄이 간질간질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전 10시 35분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소설 ‘설국’의 첫 문장.
긴 어둔 터널을 지나니 봄비가 아닌 봄눈이 내린 설국이 펼쳐진다.
또 터널 몇을 지나니 설국은 거짓처럼 끝나 버렸다.
터널의 연속이라 지루하던 기차여행에서 터널 덕에 신비스러운 풍경들을 마주한다.
삶은 터널과 찰나의 연속.
오늘 처음으로 맑은 햇빛을 느낀다.
설국과 봄볕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기차여행.
여기는 ‘진부’.
다은 역은 ‘강릉’이다.


오전 10시 50분
차창 밖으로 파도처럼 하얗게 뿌려진 벚꽃들이 만개하다.
강릉 바다에 봄이 왔다.

[에필로그]
2019년 3월 31일 오후 5시 40분
가까이 봄이 어여쁜 것은 아니다.
멀찍이 바라봄도 아름다움이 진동할 때가 있다.
뭉텅이 흐트러트린 산꽃들이 그러하고,
포말이 되도록 저 너머 바다에서 몰아친 파도가 그러했다.

이번 봄 강릉에는 산꽃과 파도 두 가지를 심어 두고 떠난다.